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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

촬영일정

영화는 5월부터 12월까지 촬영되었으며 그것은 감독의 창작시기와 워킹할리데이라는 유효한 제도를 통해 시행되었다.

촬영일정은 사실 2개월의 연수, 코디네이터 치하루씨의 기획에 따른 작업장 방문, 후 7월부터 시작되었는데 한달간 치타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큐의 두 조류 중 많은 말과, 보여주기 두 방식 중 보여주기가 공감력을 더 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에 열정이라는 무모함이 더해져 참 많은 테이프를 구겨져나가는 A4 용지처럼 소모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물론 촬영분은 버려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전부 캡쳐 되었지만 그 많은 분량을 보고 또 보며 장면으로 채집해 나가는 것은 모래알과 좁쌀을 한데 놓고 찾는 것과 같다. 

 

어쨌건 그 일을 말릴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감독은 일본에 갔고 또 영화를 완성했다.

 

만일 지금 이라면 훨씬 시끄러운 영화를 만들었거나

아니면 영화를 찍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일상과 공동체성이 가진 흡인력에 대한 물음표를 가지고 오히려 관객을 통해 그 답을 찾고 싶은 마음.

 

그 하나의 예시,,


 

거친 기계음과 여기저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반도체 공장 방진복 같은 하얀 색 옷을 입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어느 누구는 굉장히 집중한 모습인데 어느 누구는 장난을 치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대단한 물건이 아니다. 빵이다. ‘노동’을 말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스트는 별의 별 고민을 투여하고 제작단계에서는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며 다큐적 `숭고`함을 강화한다. ‘노동’에 대한 계기와 촉발점이 관성화 되어 있고, 그런 표현은 아무래도 ‘진짜’가 아닌듯하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다. 부드럽고 느린 시선으로 한 공장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생활을 응시하는 작품이 있다. 심민경 감독의 <왓빠 이야기>이다.

‘왓빠(わっぱ)’는 일본 말로 어린 아이를 업신여길 때 쓰는 말이라 한다. 우리의 말로 하면 ‘꼬맹이’, ‘녀석’ 정도가 되겠다. ‘왓빠 이야기’는 도시 속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이렇듯 스스로 낮은 존재로서 선언했던 한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본 나고야에 있는 이곳은 빵공장이 있고, 재활용 분류 공장이 있으며, 작은 농장과 이들의 생산물을 파는 가게가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노동을 하고 월급은 똑같이 나눠가진다. 역사는 무려 40년이 되었다. 활동가의 이상과 노력이 열정의 단계를 넘어 역사로 고스란히 남겨진 이곳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이는 바로 한국의 젊은 감독이었다.

심민경 감독은 부산 출신이다. 이 감독의 작품 속에는 오묘하게도 `이주`라는 경험이 존재한다. 전작인 단편 <자기만의 방>에서는 서울로 이주해 온 20대 대학생의 출구 없는 고단한 삶을 ‘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야기 했으며 <왓빠 이야기>에서는 직접 일본으로 이주해 가 왓빠 공동체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갔다. <자기만의 방>에서는 솔직하면서도 진솔한 인터뷰이 한명이 그의 맘을 대신했다면 <왓빠 이야기>에서는 오랜 시간과 다양한 인물들, 유기적인 공동체의 운영 원리들이 ‘이주’가 주는 생경함이라는 감독의 시선 위에 채워져 갔다. 다큐멘터리스트에게 창작은 이주와 낯섦이 주는 정서, 호기심, 그리고 개인의 경험들이 추동하는 면이 크다. 여기에 충실한 심민경 감독에게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이 대상의 이야기를 그들의 속도와 언어로 세상과 연결시켜주고픈 애틋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큐멘터리 제작 시스템의 설정되어진 구획 따윈 필요 없다. 심민경 감독에겐 ‘이주’에 따른 걱정보다 기꺼워하는 용기가 있었다.

작품 속 시간은 2010년 5월부터 12월까지로 한정되어 있다. 공간은 왓빠의 빵공장과 생활공동체가 작품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공장에 비해 중증장애인이 많은 곳이었기에 선택했다 한다. 감독은 왓빠의 운영원리나 사회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는듯하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나면 그 공동체의 역사와 현재, 고민의 속살을 알아보고 싶게 한다. 느린 생산을 통한 이윤창출은 가능한 정도인지, 아니면 국가의 지원과 긴장관계는 어떠했는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넘을 수 없는 속도와 인식의 차이는 극복되어 있는지, 하다못해 빵 맛은 어떤지... 이것은 전제된 텍스트와 소리를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재배치해 보여주는 작품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이다. 오로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노동’과 생활공동체 속의 ‘일상’이 콘크리트 벽 사이 솟아난 풀을 바라보며 가지는 여유로운 상념처럼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일상과 노동과는 다른 ‘우주’가 존재함을 <왓빠 이야기>를 보게 되면 깨닫게 된다. 당신은 안녕 하신지요? 라는 따스한 질문을 받고 곰곰이 돌아보는 맘의 여유와 한발 내딛고자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 <왓빠 이야기>가 주는 미덕이고 감독의 의도였으리라.

<왓빠 이야기>를 본 후, 개인적으로 많이 창피했었다. 좁은 세상보기, 과정의 기준에 부합한 어떤 것만 생각해 왔던 안온한 기획. 이런 것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심민경 감독의 <왓빠 이야기>는 창작의 발화와 실천, 지금의 배급까지를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담당했다.(물론 이를 옆에서 지지, 지원한 동료, 선후배 감독들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뚝심’이라는 독립다큐의 일반적인 키워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느낀다. 독립다큐멘터리스트로서 시작과 끝을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온전히 스스로 서려 하는 창작자의 관장력이 이리 부드럽게도 관철될 수 있구나 하는 자성 같은 거라고나 할까. 혹시 ‘고집’은 아니었는지, 다름을 찾으려 했지만 그저 주어진 것을 재생산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마치 동료 창작자로서 고향과도 같은 작품을 대할 때 가지게 되는 창피함이었다. 

16:9라는 가로로 긴 화면비가 대세가 되어 버린 시대. 채워 넣어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좋아라 했었다. 4:3 정사각형 화면비의 딱딱함에 질색한 체 우리는 화면 너머의 욕망의 세계를 갈구하며 프레임의 변화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스펙터클에 빠져버린 시대. <왓빠 이야기>는 하루 종일 틀에 낀 빵조각을 띠어내고 밀가루로 빵모양을 만들며 하릴 없이 사람들을 때리고 다니는 사람들의 온전한 기운을 4:3이라는 네모난 화면 가득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노동을 한다는 것, 같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질문을 하고 답을 고민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왓빠 이야기> 속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빵은 아주 맛있다고 한다.    by.태준식(다큐멘터리 감독) 2012-07-18조회 3,131